현금의 익명성, 신용보장, 전자유통의 편의 및 확장, 안정된 가치저장수단이라는 금융자산의 네 가지 속성을 모두 갖출 수 있다면 아주 훌륭한 통화가 될 수 있다. 그러한 통화는 과세와 규제를 내세우는 정부를 혐오하고 개인적 자유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비트코인은 바로 이러한 미래를 약속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비트코인은 Amex, 비자(0.48%), 마스터카드(0.59%) 등 제3자 또는 은행이라는 신용보증기관 없이도 모르는 사람끼리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익명성 창출에 성공했다. 비트코인은 현재 최적 수준의 확장성과 편의성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현재 비트코인은 초당 7건의 거래를 처리하고 거래확정에 10분이 소요되지만 이러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으리라 보인다. 전자지갑은 비트코인 자체보다 안전성이 훨씬 떨어지며 기술에 능통한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한 가치저장수단이란 측면에서는 비트코인은 아직 신뢰하기 어렵다.
비트코인에는 자체적 가치가 전혀 없다.
어느 정부도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하지 않고 있으며 비트코인을 뒷받침하는 자산 또한 전혀 없다. 비트코인은 유형자산이나 무형자산 그 어느 쪽에도 속하기 어렵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예술품처럼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있다. 현재 연간 8% 가량의 속도로 비트코인이 생성되고 있으며 이러한 생성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져 결국 비트코인의 총 생성량은 2100만을 넘지 않게 된다. 돈을 주고 예술품을 거래하려는 수요가 존재하는 이상 예술품 시장은 존속하게 되며 이에 따라 예술품은 하나의 가치저장수단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돈을 주고 비트코인을 거래하려는 수요가 존재하는 한 비트코인 역시 가치저장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사례를 보면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18세기 영국의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 2000년대 닷컴주식의 열풍은 모두 거품붕괴로 막을 내렸다.
비트코인이 버블에 그치지 않을 수 있는 해답은 바로 비트코인의 핵심인 블록체인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 시장이 안정되고 장기적인 가치저장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비트코인이 취약하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극심한 휘발성을 문제삼을 수 있다. 최근 3년 동안 비트코인 가격은 5달러부터 1200달러까지 들쑥날쑥했으며 현재는 250달러(한화 약 28만원) 가량에 거래된다. 또한 비트코인의 유동성부족도 지적될 수 있다. 현재 존재하는 비트코인의 총 가치는 대략 32억 달러다. 그러나 비트코인 일일 거래물량은 2백만 달러 정도다(일반적인 32억 달러 규모 회사의 4분의 1 수준이다). 아울러 비트코인 대량보유자들이 유동성을 조작하고자 담합하여 거래현황을 사전 조작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는 어떠한 규제나 메커니즘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비트코인 보유현황은 주식에 비해 훨씬 편중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비트코인에 대해 잘 아는 지인(일류 비트코인 거래소 운영을 담당했으며 비트코인 채굴자로서 성공적이라고 알려진)에 따르면 20명 미만의 개인이 전체 비트코인 물량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이 담합을 하기는커녕 서로의 정체조차 알고 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지만 만약 여건이 마련된다면 이들이 전형적인 투기(pump and dump; 저가매입 자산을 가격폭등 후 되파는 수법) 작전을 실행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비트코인을 일부 유동자산으로 축적하는 개인이 늘고 있으나 그 분량은 많지 않다.
어쩌면 이러한 편중은 애초에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MacKay의 "대중의 미망과 광기(원제: Extraordinary Popular Delusions and the Madness of Crowds)"라든지 Kindleberger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원제: Manias, Panics and Crashes: A History of Financial Crisis)"와 같은 널리 알려진 저술을 접해 본 사람이라면 비트코인이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버블의 속성을 가졌음을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버블에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이라는 핵심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은행, 신용카드회사, 증권거래소 등 전자기록보관에 의존하는 회사를 붕괴시킬 수 있는 잠자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기관의 거래장부는 중앙집중 방식으로 기밀 보관되기 때문에계좌 보유자들은 해킹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조직체는 대체로 규모가 크고 관료적이며 유연성도 부족하다. 반면 블록체인은 아주 안전한 암호화를 통해 계좌보유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며 컴퓨터만 있다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공공장부다. 수천 혹은 수십만에 달하는 개별 보관인(비트코인 용어로는 채굴자)들이 블록체인을 유지한다. 이들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서로 경쟁하기도 하지만 이는 전체 커뮤니티가 정확한 장부에 합의하는 경우다. 이를 통해 생성되고 검증된 장부는 현재 비트코인의 보유현황에 그치지 않고 비트코인이 처음 생겨난 이래 누가 얼마만큼의 코인을 보유했는지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 종래의 은행, 신용카드회사, 증권 및 물품거래상의 경우 물리적인 지점과 법적 관할이 미치는 정체성을 보유하기 때문에 규제와 과세에 필연적으로 노출된다. 이와 달리 블록체인은 클라우드에 서식하며 정부통제를 완전히 혹은 적어도 거의 받지 않는 속성이 있다.
비트코인 자체의 가치는 적을지 몰라도 비트코인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에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신용카드회사는 소비자로부터 판매자에게 가치를 이전하느 과정에 대해 2.5% 가량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은행 또한 국제거래의 경우에 그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다. 반면 블록체인 거래의 수수료율은 0.5% 정도로 낮은 수준이며 이는 더욱 낮아질 수도 있다. 블록체인은 자동차, 부동산, 예술품을 비롯하여 특허 및 로열티와 같은 무형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기록하고 이전할 수 있는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블록체인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끼리의 안전한 대출거래가 가능해진다.
블록체인 기술은 이미 상당수의 벤처기업을 자극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특히 전통적인 은행 및 금융시장에서 두드러진다. 리플(Ripple)은 기존의 은행시스템을 은행 간 결제네트워크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NYSE는 비트코인 거래플랫폼인 코인베이스(Coinbase)에 투ㅏ했다. 골드만삭스는 비트코인 창업기업인 Circle Internet Financial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IBM의 경우 전자결제시스템을 제작 중에 있으며 삼성 또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사물인터넷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등장할 블록체인 2.0 혹은 3.0은 단순히 효율적인 결제방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리라 예상된다. 차세대 블록체인은 전산, 네트워크디자인, 암호화, 인공지능의 요소를 두로 접목하게 된다. 최근 창업한 이더리움(Ethereum)이라는 업체는 지구 공통 플랫폼과 프로그램 언어를 개발 중이며 이는 모든 유형의 분산형 데이터처리, 메시지전송, 파일서비스, 평판기록 어플리케이션 등의 기초가 되는 암호화 생태계의 근간이 된다. 현재 블록체인은 말하자면 웹의 초기 모습과 비슷하다. 탈중앙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함으로써 그 미래는 장대하고 찬란해 보이지만 일부 예상 가능한 부분 외에 자세한 모습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현재 비트코인을 보유한 사람들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기반이 되는 암호화, 웹, P2P를 비롯한 각종 아이디어들은 앞으로 거대한 격동을 일으키는 신기술이 될지도 모른다. 또다른 인터넷으로서 종래 금융과 정부가 지배하던 영역에 혁신을 불러오는 것이다.
비트코인 자체의 가치는 알마 안 될 수도 있겠지만 비트코인의 기반기술이 가진 잠재력은 가히 엄청나다고 하겠다.
Robert Rosenkranz, Bitcoin's Value Isn't Currency, It's Technology, 7. 7. 2015.
http://www.forbes.com/sites/robertrosenkranz/2015/07/07/bitcoins-value-isnt-currency-its-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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